본문 바로가기

경제

주식의 시작- 역사는 반복된다.

반응형

안녕하세요 

주식을 하면서 역사는 어떻게 시작됬지??

이런 의문에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본시장의 시작

주식

대항해시대(Age Of Discovert): 발견의 시대라는 뜻으로

유럽인들이 항해술을 발전시켜서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로

가는 항로와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목적은 식민지 확장 및 제국주의를 이룰려는 유럽인들의

야망에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출처- 나무위키

그 중심에는 "향신료(후추)"라는 고가품이 있었습니다다.

고가의 향신료를 구하는 것이 어려워져 가격이 끝도 없이 올랐고,

돌아서 인도에 가면 비교적으로 쉽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의문에서 대항해시대가 열린것입니다.

당시에는 아메리카나 인도에서 생산된 제품은

신대륙에서 얻어온 환상의 물건들이라고 생각하여

엄청난 부를 가져다 주었으며,

한번 항해에 성공만해도

말단선원부터 선장까지 성공의 신화로 남아

많은 사람들이 신대륙 향해의 도전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1600년 12월31일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절대독점을 하기위해 영국 동인도회사가 설립되고,

2년뒤 네덜란드 상인들이 자극을 받아

1602년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역사상 가장 큰 회사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지분을 판매하는 역사상 최초의

주식회사이며, 근대금융에 큰기여를 한기업입니다.

 

당시 설립투자금은 650만길더

원화로 환산했을떄 약 43억정도입다.

투자자들중 급작스럽게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고,

약간의 이익만 받고 권리를 포기하고 거래를 하기 시작하다가

1609년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가 생기게 됩니다.

거품의 시작과 붕괴


 

그 첫번째 남해거품사건

1720년 영국을 뒤흔든 거품경제 위기 사건입니다.

남해회사라는 기업은 영국정부가 남미와의 무역을 전담할

목적으로 세운 공기업이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남미를 장악한 국가는 스페인이였으니 이익은 커녕

빛만지게 되었으며,

그러던 중 남해회사는 복권형식의 채권을 판매하면서

금융회사로 탈바꿈에 성공하게 됩니다.

 

남해회사는 스페인으로부터 남미지역 항구에 대한 기착권을

따내고, 새로운 금광을 발견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100파운드에서 1,000파운드까지 치솟았습니다.

무려 8개월만에 10배가 올랐던 셈입니다.

그 후 당연히 주가는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미 영국정부관료들은 주식을 팔아치우고 난 다음이였고,

다시 주가는 9월에 150파운드 까지 떨어집니다.

당시 아이작 뉴턴도 20억을 잃으면서

"사람의 광기는 도저히 측정할수 없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두번째 사건 튤립파동사건

 

-출처- 나무위키

신비의 꽃인 튤립은 유럽에는 없던 꽃인데

네덜란드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알려졌고,

희귀한 튤립은 부유층들 사이에서 부의 척도로 간주되기

시작하면서 튤립거품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서민들은 일확천금의 꿈을 가지고,

튤립을 재배하기 시작했으며, 변종을 일이킨 튤립일수록

비싼가격으로 매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네덜란드 지역에서는 흑사병이 재발해서

인구의 8분의1이 사망하고, 튤립에 더욱 더 투자하면서

튤립의 값어치는 끝도없이 쏫아 올랐습니다.

 

1636년 절정에 올랐으며, 한달동안 몇천퍼센트나

상승하기도 했습니다.

튤립하나에 현재 원화가치로 약 3,000만원에 달하는

가격이였습니다.

1637년 이 현상은 지속되지 못했으며,

공급이 수요를 뛰어넘게 되면서 광기의 투자는 사라지게 되고,

튤립가격은 급격하게 폭락하고,

최고점에서 약 95%까지 빠져버리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화가 얀 반 호이엔은 천문학적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평생 그림과 데셍을 그리고 팔면서

빚을 갖게 되었습니다.

 

얀 반 호이엔 -출저- 구글이미지

 


세번째 미시시피 거품(통화정책)

프랑스는 루이14세가 왕권신수설을 내세우며,

사치와 전쟁에 돈을 쏟아 부었고

그 결과 빚에 허덕이고 이자조차 내지 못할 지경이였습니다.

 

국가 파산위기 속에 스코틀랜드에서 온 존로는

금본위제형태의 화폐시스템을

국가가 보장하고 지폐를 발행하는 제안을 하게 되었고,

실제로 프랑스는 은행(BANK)를 설립하고 지폐로만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통화공급량을 조절하고 유동성을 높이면서,

경제는 날로 활발해지면서, 존로는 프랑스정부의

신뢰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1717년 존로는 미국 미시시피강 유역을 점하고

독점권을 갖고 있던 미시시피회사를 인수합니다.

당시 프랑스정부의 신뢰를 바탕으로

담배독점권과 무역독점권을 얻어내고,

중국쪽과 인도쪽 회사의 승인도 얻어내면서

주가는 천정부지로 쏟아 올랐습니다.

 

당시 1718년 300리브로에서

1719년 2만 리브로까지 약 6,000배까지 상승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프랑스정부는 통화량을 증가시키고,

화폐가치는 떨어지고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경기가 과열됬다는 의심을 시작으로

주식을 교환하기 시작했고, 주가는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720년 6월 미시시피 회사의 주가는 500리브까지

떨어지면서 시민들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존로는 베네치아로 도망가 그곳에서 객사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는 재정의 건전성이 무너지고,

계급간의 불화로 인해 결국 프랑스 혁명까지 일어납니다.

오늘날 프랑스는 아직도 은행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며,

BANK라는 단어보다는 Credit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미시시피 버블을 풍자한 당시 삽화 -출처-매일경제


그리고 거품은 계속되었고

20세기 최악의 거품은 일본의 자산버블

당시 거품이 붕괴될때 1500조엔이 한순간의 사라지면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또 닷컴버블, 비트코인거품

이렇게 거품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의 광기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반응형